오늘도 지저귀는 박쥐동굴

redbat.egloos.com

포토로그



[원펀맨] - 알맹이만 남긴 히어로 만화 지저귐

<원펀맨>은 너무나도 강해 어떤 적이든 주먹 한 방 (원펀치)로 끝내버리는 대머리 히어로 '사이타마'의 괴인 퇴치를 다룬 만화로, 최근 애니메이션화로 인해 현재 가장 인기있는 소년 만화 중 하나입니다.

사이타마의 아이덴티티는 3가지입니다. 대머리, 히어로, 한 방(원펀치).

이 중 핵심은 '히어로'입니다. 더 설명할 것도 없이 이것이 <원펀맨>의 주제입니다. '히어로란 무엇인가?' 말이지요. 나머지 두 가지는 그에 대한 답입니다.

대머리, 한 방(원펀치). 둘이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고민 끝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기본'입니다.

대머리인 사이타마의 얼굴은 사람 얼굴의 가장 기본 베이스입니다. 사이타마의 옷 또한 망토와 타이즈라는 가장 기본적인 히어로의 복장입니다. 이런 사이타마의 디자인은 '가장 기본적인 히어로'를 상징합니다.

히어로의 외형은 그렇다치고, 히어로가 해야 할 일은? 매우 간단합니다. 악당을 무찌르는 것. 어떻게? 악당을 공격해서. 그리고 공격의 기본은 펀치입니다.

대머리에 망토와 타이즈를 입고, 악당을 향해 한 방의 펀치를 날리는 사이타마. 그것은 바로 히어로의 기본을 뜻합니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원펀맨>의 주제도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원펀맨>에는 매우 다양한 개성과 컴플렉스를 가진 히어로들이 등장합니다. 사회적 명성에 집착하는 히어로, 강자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는 히어로, 공포에 질려 싸우지 못하는 히어로. 사이타마는 그런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존재입니다.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히어로란 그저 악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것뿐. 그걸로 충분하다. 그걸 깨닫는 순간 히어로에게 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원펀맨>은 항상 사이타마가 주먹 한 방으로 괴인을 처치하는 전개로 끝납니다. 그렇게 끝나는 이유는 사이타마가 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작품 내적으로야 그 이유가 맞지만 작품 외적으로는 다릅니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진 사이타마에게는 어떤 '악'도 시시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시한 존재와의 싸움을 길게 묘사하는 것 따위 아무도 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작가는 사이타마가 주먹을 내지른 순간 이야기를 끝내버리는 것입니다. 사이타마에게 불굴의 신념이 있는 이상, 그는 이미 승리자인 거지요.

그 점에서 주목할 만한 캐릭터가 '무면허 라이더'입니다. 무면허 라이더는 사이타마와 달리 전혀 강하지 않은 히어로입니다. 그러나 최강의 히어로인 사이타마와 함께 작중 가장 히어로다운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에 구애되지 않고 히어로의 본분에 충실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와의 힘의 차이, 자신의 입장, 현재의 상황 등에 구애받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똑같으며, 그렇기에 무면허 라이더 역시 힘으로는 괴인들을 이길 수 없을 지언정, 그의 히어로로서의 정신은 사이타마와 마찬가지로 결코 꺾이지 않습니다. 사이타마가 완전한 이상의 상징이라면, 무면허 라이더는 현실 속에서 구현된 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이타마를 상징하는 대사 중 하나가 있습니다. "팔굽혀펴기 100회! 윗몸일으키기 100회! 스쿼트 100회! 런닝 10km! 이걸 매일 한다! (중략) 난 대머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강해져 있었다!"

저는 이 대사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랬더니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랬더니 나에게 적이란 없게 되었다."

그러나 히어로로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갖춘 사이타마도 결코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언제나 허무함에 젖어살고 있으며, 자신의 의욕을 불태우게 할 적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적을 만나도 그 허무함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런 사이타마의 고민은 <원펀맨>이 단순한 먼치킨물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이타마는 완전한 정의의 구현입니다. 그러나 그 '정의'란 악을 물리치고 더 나의 세상으로 진보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정의가 확고한 사이타마는 어떤 악을 상대로도 위협을 느끼지 못합니다. 완전한 정의이기 때문에 악에게 대항해야 하지만, 정의가 완전해서 악에게 대항심을 느낄 수 없는 딜레마. 이것이 사이타마가 가진 딜레마입니다.

<원펀맨>이 주인공의 초월적인 강함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흥미진진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사이타마의 진정한 적은 악이 아니라 딜레마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악을 아무리 쓰러트려도 사이타마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이타마가 저 딜레마를 깨트릴 때 사이타마의 굶주림은 채워지고 목적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원펀맨>의 이야기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여정입니다.

항상 사이타마에게 상대도 안 되는 괴인들 중에 가장 강했던 괴인은 보로스와 가로우입니다. 보로스는 사이타마의 '강적과 싸우고 싶다는 욕망'을 공유하는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사이타마도 간단히 부정할 수는 없는 인물입니다. 그건 자신을 부정하는 결과와 이어지니까요. 가로우는 히어로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악을 변호하는 인물입니다. '히어로가 무슨 자격으로 악을 일방적으로 부정하는가'라는 히어로의 근본적인 문제를 공격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역시 간단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사이타마가 '진심'으로 부정할 정도의 의욕을 끌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였을 뿐, 이들도 사이타마의 확고한 정의를 위협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쯤되면 사이타마가 악과 싸우는 것의 의미를 잃고 히어로를 그만둘 법도 하지만, 그는 결코 그러지 않습니다. 히어로에게 정의를 포기해야 할 이유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자신이 히어로로서 진짜 본분을 다할 날을 기다리며, 히어로로서 존재하는 모순까지 끌어안은 채, 어떤 시시한 악에서도 눈을 돌리지 않고 정의를 집행합니다. 그래서 그는 진짜 히어로입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