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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로드] - '공포'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공포'가 되다 라이트노벨 지저귐

관련글: [오버로드] - '강한 힘'을 가지는 것만으로, 인간이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지난번 [오버로드]에 대한 감상에 대해 이런저런 반대 의견을 많이 들었고, 저도 미흡한 점을 많이 느껴서 다시 한번 <오버로드>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주로 아인즈가 '평범한 사람'이라는데 반대 의견이 많았는데, 듣고 보니 이 표현으로는 아인즈와 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인즈의 캐릭터성에서 느낀 매력은 다른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오해가 있을까봐 미리 말하는데, 이 '매력'이라는 것은 캐릭터에게 흥미를 갖게 만들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매력'이라는 거지, 아인즈가 뭐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는 식의 말은 아닙니다.) 좀 고민해본 결과 그게 뭔지 깨달았고, 그랬더니 <오버로드> 자체의 키워드가 뭔지 깨달았습니다.

'공포'입니다.

아인즈의 캐릭터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은 거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작중 누구보다도 공포스러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자기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공포에 짓눌려 사는 캐릭터라는 사실이지요. 이 모순이 아인즈와 <오버로드>의 매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인즈의 캐릭터는 한 마디로 말해 이렇습니다. '최강의 언데드로서 군림하는 소시민 스즈키 사토루'.

아인즈는 공포스러운 존재입니다. 최강의 힘을 가졌고, 공포스런 외형을 지녔으며, 힘으로 세상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절대적인 존재이자 인간이 아닌 존재라서 인간에게 자비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인즈의 모든 공포스런 행동은, 사실 아인즈 본인이 공포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는 '허세'에 불과합니다. 아인즈는 누구보다도 강해서 사실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만, 아인즈는 세상 모든 것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지고의 언데드 아인즈의 정체는 사실 심약한 회사원 스즈키 사토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겁많은 스즈키 사토루는 필사적으로 아인즈를 '연기'하며 불안을 떨쳐내려고 합니다.

아인즈의 행동 원리는 언제나 '공포', 혹은 '불안'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인즈의 행동이 새롭게 이해됩니다.

부하들에게 항상 허세부리는 것? 부하들의 충성을 잃을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정보를 얻으려는 것? 세상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두렵기 때문입니다.
힘을 기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언제 보이지 않는 적이 쳐들어 올지 두렵기 때문입니다.
언데드로서 인간을 하등한 종족으로 보고 잔인하게 대하는 것? 인간과 대등하게 서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우위에 있는 상황이 아니면 상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하들을 아끼고 적에게는 잔인한 것? 자기 편을 잃을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지나가던이 님께서 쓰신 글(아인즈의 성향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에서 아인즈가 사실 가장 약한 사람이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인즈는 아무리 강한 힘을 갖고 있어도 내면은 너무나도 약합니다. 그래서 있지도 않은 자신의 적을 두려워하며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벽을 치고 주위에 이빨을 들이대며 위협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자릭 지하대분묘'입니다.

나자릭은 작중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입니다. <오버로드>의 시작이 나자릭 지하대분묘를 상세히 묘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는 점이 이를 드러냅니다.

나자릭 지하대분묘에 대해 작중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표현은 '1500명의 대군이 돌파하지 못한 요새'라는 점입니다. 이렇듯 나자릭은 몇 번이고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이미지를 매우 강하게 드러냅니다. 요새라는 것은 지키기 위한 용도로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당연히 아인즈입니다. 무엇으로부터? 적으로부터? 말도 안 됩니다. 아인즈에게 적 따위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바로 '공포'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아인즈는 자신을, 그리고 나자릭을 강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나 그 노력은 아무리 해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공포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새운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걸 모르는 아인즈는 헛된 노력을 계속하며 힘을 긁어모읍니다. 힘으로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는 방식으로.

그럼 아인즈의 공포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그건 <오버로드>의 서두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읽어보신 분들은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오버로드>는 아인즈, 정확히는 모몬가가 함께 해 온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혼자가 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들은 단순한 친구들이 아니라, 작중의 험한 현실 세계와 위그드라실의 게임 세계에서 모몬가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잃어버린 아인즈는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리고, 혼자서 세상에 맞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혼자 내평겨쳐졌다는 공포스런 사실을 아인즈는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있지도 않은 과거의 친구들에게 사로잡힙니다. 그들과의 추억이 담긴 나자릭 지하대분묘, 계층수호자들을 필두로 한 NPC들, 그리고 '아인즈 울 고운'이라는 이름을 그가 지켜야 할 모든 것으로 규정하고 그 이외의 모든 것을 적으로 규정합니다. 자신 이외의 모든 세계를요.

이것이 아인즈가 지닌 '공포'의 정체입니다. 아인즈는 세계를 적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스스로. 전혀 자각 없이.

아인즈는 원래가 세상은 자기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정한 것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된 것이 아인즈가 세계로부터 버림받은 탓인지, 아니면 아인즈가 원래 세계를 등진 성격이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둘 다일 겁니다. 원인이 뭐든 간에, 아인즈는 세상을 등졌기 때문에 공포에 떨고, 공포에 떨어서 세상을 등지는 악순환에 빠져있습니다. 그리고 악순환이 해결될 기미는 없고 피해자들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 출간된 분량까지는요.

공포를 극복하려는 아인즈의 성실한 노력이 주변에는 얼마나 잔인한 '공포'로서 다가오는지 <오버로드>는 매우 치밀하게 묘사합니다. 아인즈는 자신이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닌 이들에게는 무정하고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아인즈에게 희생되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삶을 묘사합니다. 각자 목적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던 삶이 아인즈에게 무참히 부서지는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아인즈의 공포스러움과 잔인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아인즈의 세상에 대한 공포심은 지나친 면은 있지만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대한 공포는 누구에게나 크든 작든 존재합니다. 그 공포를 철저한 준비 끝에 강력한 힘으로 짓누루는 아인즈의 모습은, 사람들이 내면에 가진 욕구를 투영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힘으로 눌러버리고 싶은 욕구. 그 욕구는 순전히 나쁜 것이라고는 할 수 없고,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한계를 찾지 못할 경우 얼마나 끔찍한 것이 되는지를 <오버로드>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버로드>가 어떻게 끝날지에 대해 이야기가 분분합니다. 적어도 저는 '아인즈가 끝없이 폭주하여 세계정복하고 그걸로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나쁘거나 허무한 결말이어서가 아닙니다. 세계를 정복하더라도 어차피 아인즈의 공포는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끝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아인즈는 앞으로 영원히 폭주할 거라는 네버 엔딩 스토리가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든 아인즈의 공포에 결착을 맺어야만 <오버로드>가 끝날 수 있습니다. 아인즈가 스스로 깨달을지, 아니면 누군가가 깨우쳐줄지, 끝까지 깨닫지 못한 채 파멸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지금 상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만약 세계정복이 성공하는 전개로 간다면, 세계를 전부 손에 넣고도 친구들을 찾을 수 없던 아인즈가 허무함을 느끼고, 그것이 변화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흔히 나오는 이야기잖습니까? 세계정복을 성공하면 그 다음에는 대체 할 게 뭐냐는 이야기. 아니면 말고지만요.

여담으로 얼마 전 <한때 신이었던 짐승들에게>라는 만화를 읽었습니다. 전쟁에서 괴물의 모습으로 싸우던 '의신병'이라는 군인들이, 전쟁이 끝난 후 사회의 해악이 되어 사냥당한다는 내용이었지요. 그 중 두 번째로 등장한 미노타우로스 병사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병사는 죽는 게 무서워서 싸우지도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당시 상관이었던 주인공에게서 '죽는 게 무섭다면 죽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야 한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다.'라는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 덕분에 그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도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는 도시 안에 미궁요새를 만들고 시민들에게 전쟁준비를 강요하며 해악을 끼칩니다.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요새가 모순적으로 세상을 적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잘못된 길로 빠진 부하를 주인공은 자기 손으로 처단하고, 미노타우로스는 그제서야 공포에서 해방됩니다.

세상이 두려워 자신을 미궁 안에 가두고 세상을 적으로 돌리는 미노타우로스. 그 모습이 아인즈와 겹쳐 보이더군요. 나자릭 지하대분묘에 자신을 가두고 세상을 적으로 돌리고 있는 아인즈 말입니다.

덧글

  • 풍신 2016/04/16 12:50 # 답글

    전 7권을 보고 오버로드란 작품에 대해서 포기했기 때문에...

    강력한 위협에 의한 공포와, 뭔가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말로는 같은 것이지만, 완전 다른 것이라고 봅니다. 위협에 의한 공포의 근원은 외부에 있고, 확실히 생명의 위협이 있어서 정당하지만,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정신적인 것이나 불신에 기인하기 때문에, 생명의 위협은 되지 않는데, 아인즈는 후자의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을 죽이고 있으니까요.

    저에겐 두려움이라기 보다는 미련, 그것도 옛 인연에 얽매여서 울고 있는 인간(?)에 가까운 이미지를 받았습니다.
  • 붉은박쥐 2016/04/18 22:30 #

    저도 그 점은 느꼈지요. 굳이 따지자면 옛 인연의 찌꺼기를 붙잡고,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서 새로운 인연을 맺지 않고 도망치고 있는 어린아이? 그런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아인즈의 마음은 풍신 님께서 말씀하신 공포, 두려움, 미련 전부가 뒤얽힌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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