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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ROBAKO]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이어지는 사람들 애니메이션 지저귐

<SHIROBAKO>(이하 <시로바코>)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애니메이션'입니다. 고등학교 때 함께 동아리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5명의 소녀들이 어른이 된 후 애니메이션 업계에 뛰어들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애니의 핵심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애니메이션'입니다. 소설가, 만화가가 주인공인 만화는 제법 많이 있지만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주인공인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적어도 저는 <시로바코> 이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군요. 이유는 알 법 합니다. 애니메이션은 소설이나 만화와는 차별되는 명확한 특징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주인공'이 없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수많은 사람들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지고 누구 한 명의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애니메이션의 다루기 어려운 특징에 <시로바코>는 과감하게 도전합니다. <시로바코>에는 한 명의 주인공이 없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애니메이션 업계' 자체가 주인공입니다. 주인공 위치에 있는 미야모리 아오이는 그들의 대표 역할로 등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로바코>는 무척이나 견실한 애니메이션입니다.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어떤 변칙적인 내용 없이 정석적인 군상극으로 그려냅니다. 감독, 각본가, 애니메이터, 성우를 비롯해 수십 가지 역할을 가진 제작진의 활약을 하나하나 그려냅니다. 한 명 한 명의 개성과 활약을 다양하게 묘사한 것도 굉장하지만 정말로 굉장한 것은 그들이 '하나'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힘을 합치는 것입니다.

저는 1화는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고 2화부터 <시로바코>를 재밌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2화 B파트를 통째로 차지한 제작 회의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었거든요. 애니메이션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각자가 의견을 내며 하나의 방향을 결정하고, 결정되자마자 각자의 역할을 배분하며 팀워크를 발휘하는 장면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하나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시로바코>의 주제입니다.

그런 이야기니까 주인공 미야모리의 역할은 무의미하냐고 하면, 당연히 아닙니다. 미야모리는 앞에서 설명한 <시로바코>의 매력을 하나로 합친 캐릭터입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 누구냐고 하면 보통 감독, 각본가, 애니메이터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미야모리의 직업은 그 중 어느 것도 아닌 '제작 진행'입니다. 제작 진행은 감독처럼 애니의 방향을 결정하지도, 각본가처럼 애니의 뼈대인 각본을 쓰지도, 애니메이터처럼 애니 영상 자체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애니의 퀄리티를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이기는 하지만 애니의 결과물 자체에는 거의 자기 색깔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여러 모로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는 어려운 보조 역할인 셈입니다.

그런데도 미야모리가 주인공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앞서 <시로바코>의 주인공은 애니메이션 업계 자체, 즉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모두라고 했습니다. 제작 진행인 미야모리는 그 '모두'를 하나로 묶고 이끌어주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시로바코>의 모든 주인공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접점이 미야모리인 셈입니다.

미야모리는 애니를 만드는 과정에서 애니를 만드는 수많은 사람 한 명 한 명의 중요성을 몸으로 실감합니다. 현장에서 애니를 만드는 사람은 물론이고, 과거에 애니를 만들며 길을 개척한 사람들까지. <시로바코>를 재밌게 만들어주는 장면들은 언뜻 눈에 띄지 않는 한 명 한 명의 중요성이 밝혀지는 장면들입니다. 업계의 퇴물처럼 여겨지던 스기에 씨가 <엑소더스!>의 제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처럼요.

애니메이션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이 다 소중한 존재이며, 그들 모두가 '애니메이션'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보이지 않은 끈으로 이어져있다는 것. 그것이 <시로바코>의 매력입니다. 이를 반영하듯 극중 애니메이션 <엑소더스!>와 <제3비행소녀대>는 주인공들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고 일어서는 결말로 끝납니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시로바코>의 모든 것을 설명한 미야모리의 연설로 마무리합니다.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3소녀(제3비행소녀대)에 관여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놀랐어요. (중략) 하지만 이야기를 만들거나, 캐릭터를 그리거나, 그걸 생생하게 움직이거나, 그리고 연기나, 음악이나,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의 많은 노력....재능들이 더해져서 3소녀가 만들어졌겠지요. 그리고 직접적인 연결이 아니더라도 간접적이거나, 과거나 다른 작품, 회사에서 이어진 것도 있으니까, 그것까지 포함하면 몇십만이나 되는 사람, 수 년, 수십 년이나 되는 시간이 들어갔고, 봐주시는 분들의 감상이나 마음까지 전부 합쳐서 애니가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요? 그건 어쩌면 가느다란 촛불 같은 걸지도 모르지만, 그 작은 불이 다음 사람에게 차례로 이어지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 세계를 비춰주는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비춰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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