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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라킬> - '옷'을 통해 '사람'을 말하다 애니메이션 지저귐


 * 이 포스팅은 <킬라킬>의 내용을 누설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글을 써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킬라킬>은 머리로 생각하는 작품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작품입니다. 그런 작품을 분석하겠다고 주절주절 떠들어봤자 별다른 의미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왕 떠오른 생각이 있으면 머릿속에 처박아두는 것보다는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적어봅니다.

<킬라킬>의 가장 큰 특징은 '옷'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공 류코는 말하는 세일러복 센케츠를 입고, 혼노지 학원에서 극제복이라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싸우며, 종래에는 옷 자체인 커버즈와 결전을 치릅니다.

그렇다고 <킬라킬>이 옷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킬라킬>은 옷을 소재로 하여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즉, <킬라킬>의 주제는 '인간 찬가'입니다.


사람과 옷을 분리시키다

우리는 인간을 종종 옷을 통해 파악하고는 합니다. 어떤 화가가 전설적인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의 그림을 그린다고 합시다. 이 화가가 조던의 얼굴을 아무리 완벽하게 묘사한다고 해도, 만약 조던이 카디건과 청바지를 입고 있다면 그 그림을 조던의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옷에 의해 사람을 판정하고는 합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옷을 입고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옷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부속물이지 사람의 본질이 아닙니다. 본질은 옷 안쪽의 알몸입니다.

<킬라킬>은 사람이 옷과 싸우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옷과 분리시켜서 보는 효과를 가져오고, 그래서 사람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킬라킬>이 사람과 옷의 관계에 대해서 사회학적이나 과학적인 분석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순수하게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인간 찬가'는 사람이 옷과 싸우는 내용을 통하고 있기에 독특하게 보이고 설득력 있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주인공 류코가 사용하는 무기는 '가위'입니다. 류코의 가위는 재봉가위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재봉가위는 옷을 자르는 용도로 만들어진 도구입니다. 옷과 싸우는 이야기에서 이보다 어울리는 무기는 없을 것입니다.


카무이의 매력

<킬라킬>에서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은 파격적인 노출도를 자랑하는 카무이 센케츠와 준케츠입니다. 노출도가 심하기로 이름 높은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도 이 정도의 노출도를 보여주는 복장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카무이의 디자인은 단순히 노출도를 높인 것이 아닙니다. 신체를 거의 가리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잘 보면 옷에 감싸여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커다란 어깨 장식과 튼튼한 하의, 그리고 상하의를 연결하는 벨트 덕분에 생기는 효과입니다. 신체를 감싸고 있으면서도 피부는 거의 가리고 있지 않은 카무이의 형태는 옷을 입은 것 같으면서도 안 입은 것 같은 효과를 동시에 주고 있습니다.

카무이는 강화복입니다. 주인공 류코와 사츠키는 카무이의 힘을 사용해서 싸웁니다. 그런데 모든 강화복은, 더 나아가서는 모든 무기가 다 그렇지만, 마치 사람이 강한 것이 아니라 강화복이 강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쉽습니다. 이는 혼노지 학원에서 사용하는 강화복인 극제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카무이의 특이합니다.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사람의 몸은 거의 다 드러내고 있습니다. 때문에 옷의 힘만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 본인이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동시에 주고 있습니다. 카무이가 <킬라킬>에서 유독 특별해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며, 류코의 인의일체와 사츠키의 인의압도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들은 옷의 힘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후반에 류코가 준케츠에 삼켜졌을 때의 모습은 노출도가 확연하게 낮습니다. 류코가 옷인 준케츠에게 굴복했다는 의미이여, 스스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옷의 힘으로 싸우고 있을 뿐이라는 뜻입니다.


혼노지 학원 - 옷에 의해 사람을 결정하다

'혼노지 학원'은 3가지로 나누어진 '극제복'에 따라서 학생들을 4개 계급으로 분류합니다. 신분에 따라 옷을 달리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이쪽은 특이하게도 계급 자체를 옷에 따라 규정하고 있습니다. 신분에 따라 옷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옷에 따라 신분을 정하는 셈입니다. 위에서 말한 '옷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것'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옷이 지배하는 학원인 혼노지 학원에서 류코의 존재는 이단적입니다. 외부에서 온 전학생이며, 학생회장인 사츠키에게 복종하지 않는 류코는, 옷으로 몸을 둘러싼 극제복에 맞서서 반쯤 벗은 카무이를 입고 싸웁니다. 이때 류코는 학생들을 상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옷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사람의 몸은 공격하지 않고 극제복 만을 파손한 뒤 카무이로 흡수합니다. 류코는 '극제복'이라고 하는 혼노지 학원의 시스템을 상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옷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학원의 시스템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류코의 모습은 카무이의 개방적인 디자인과 맞물려서 사람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7화가 뻔한 정석적인 전개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인 것은 이것을 잘 살렸기 때문입니다. 마코는 <킬라킬>에서 가장 인간 본연의, '알몸'의 자세를 가진 솔직한 캐릭터입니다. 그런 마코가 싸움부의 부장이 되어서 옷의 세상인 혼노지 학원의 시스템에 들어가고, 그 결과 사람 본연의 자세를 점차 잃어버리고 극제복을 입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 본연의 자세를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았기에 극제복의 힘에 넘어가지 않고 버티고 있었으며, 그 덕분에 마지막에 극제복을 벗어던지고 본래의 마코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7화 만큼은 옷과 싸운 사람은 류코가 아니라 마코였으며, 결국 사람이 옷에 승리하는 결말이 난 것입니다.


커버즈 - 옷과 싸우다

대문화체육제를 기점으로 이야기는 류코와 혼노지 학원의 싸움에서 누디스트 비치와 커버즈와의 싸움으로 바뀌게 됩니다. 옷을 입은 인간이었던 혼노지 학원과 달리 커버즈는 옷 자체입니다. '옷과 벌이는 싸움'이라는 소재의 핵심에 더욱 다가선 것입니다.

이때부터 주적은 하리메 누이와 키류인 라교가 됩니다. 하리메 누이는 생명섬유에서 태어나 몸이 생명섬유와 완전히 동화되어 있고, 인간처럼 생겼지만 전혀 인간 같지 않은 사고방식을 가진 존재입니다. 타인에 대한 순수한 악의로 가득 찼고, 옷을 만들어내면서도 정작 본인은 옷을 입지 못하는 그녀는 모습만 인간이지 사실상 인간보다는 '옷'을 대변하는 캐릭터입니다. 마지막에 스스로 라교의 옷이 되어버리는 그녀의 최후를 보면 더욱 확실합니다.

라교는 본래 인간이고, 그래서인지 누이보다는 인간다운 말을 합니다. 라교는 옷에 굴복한 인간을 상징하며, 본래 인간이었다가 인간성을 잃어버린 존재입니다. 인간 찬가인 <킬라킬>에서 가장 부정하고 싶은 존재로 묘사되는 '반동 인물'인 셈입니다.

누디스트 비치는 이전까지는 비중이 미미했다가, 이 시기에는 주인공 일행 전원이 결집하는 주역 조직이 됩니다. 옷과 싸우는 조직의 이름이 '누디스트 비치'라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이들은 알몸의 인간, 인간 본연의 모습만을 추구하는 인간으로서 나옵니다. 순수한 인간으로서 옷과 싸우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그래서 멋있습니다.

21화에서 준케츠에 먹힌 류코와, 센케츠 및 사츠키의 대화는 <킬라킬>의 모든 것을 함축한 대화입니다.
 류코: 그런 옷을 입은 건지 안 입은 건지 모를 모습은 추하기 그지없어!
 사츠키: 생명섬유의 노예가 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면적으로 생명섬유의 힘을 끌어낸다. 그것이 인의일체 형태다. 오히려 인류의 지혜라고 해야겠지.
 류코: 지혜 좋아하시네. 그냥 두려운 것뿐이잖아? 옷의 힘은 갖고 싶다. 하지만 마음은 뺏기기 싫다. 그런 어설픈 마음가짐의 상징이 그 모습이다. 정말이지 추하다고!
 센케츠: 그렇지 않다. 네가 인의일체가 되었을 때, 넌 완벽하게 날 입고 난 너에게 입혀져 있었다!
 사츠키: 지금 너는 준케츠에게 입혀져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아.
 류코: 그게 뭐가 나쁘지? 준케츠에게 입혀져 있으니 버틸 수 없을 정도의 쾌감이 느껴진다고. 인간은 생명섬유에게 입혀지기 위해서 태어났다. 그들에게 잘 입혀지는 게 제일 가는 행복이야.
 사츠키: 그건 노예의 행복이다!




사람이 침략자에게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 자체는 진부할 정도로 평범한 이야기지만, 그 침략자가 옷이라는 점에서 <킬라킬>은 독특한 내용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옷은 사람이 의존하는 존재이고, 더 나아가서는 마치 인간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옷을, 심지어 주인공들이 입고 있는 옷까지 지배하는 옷 '신라 코케츠'가 최종보스라는 것은 매우 어울립니다.

결국에는 옷이면서 인간이고, 옷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인의일체'를 이룬 류코와 센케츠가 신라 코케츠를 상대로 승리합니다. 옷에 넘어가 인간성을 포기한 인간인 라교가 아닌,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았던 류코의 승리인 것입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성을 보여주는 3명의 주인공

킬라킬의 제목은 입다/着る(키루)=류코 전라/裸(라)=마코 베다/斬る(키루)=사츠키를 말합니다. (출처: 킬라킬은 왜 킬라킬인가!?) 이 3명의 여주인공은 각각의 방식으로 인간성을 보여줍니다.

마코는 裸(알몸)을 상징하는 캐릭터답게, 셋 중 유일하게 옷과 아무 상관 없는 인간으로서, 가장 인간 본연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킬라킬>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말할 때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이들'이라고  말하는데, 그 대표로 항상 마코를 대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류코에게 인간 본연의 자세를 보여주면서 깨달음을 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마코로, 제작진의 생각을 가장 직접적으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사츠키는 전반부에서는 적이었다가 후반부에서 아군으로 변화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처음에는 옷을 통해 사람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사츠키는, 22화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 본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후 키나가세 츠무구가 사츠키를 두고 "쓸데없는 걸 전부 벗어던진 듯하군. 너도 어엿한 한 명의 누디스트다."라고 한 말이 사츠키의 변화를 상징합니다. 9정작 본인에게는 무시당했지만.)

류코는 着る(입다)를 상징하는 캐릭터답게 거의 모든 드라마가 옷인 센케츠와의 관계에 얽혀있습니다. 말을 하고 의지를 가진 옷인 센케츠는 아무 생각 없이 입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갖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처음에는 옷을 거부하고, 점차 옷을 받아들이고, 옷에 두려움을 느끼고, 옷을 거부하고,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류코는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인간성을 유지하는 모습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최종화에서 "옷은 옷, 사람은 사람이다!"라는 대사와 "그래도 인간은 인간으로 남을 거야."란 대사는 이를 반영하는 대사입니다.

마치며...

<킬라킬>은 처음에 말했듯이 머리로 생각하기보다는 가슴으로 느끼는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림이 거칠고 과장이 많은 것도, 이야기가 복잡한 말을 늘어놓지 않고 신속하게 나아갑니다. 머리 속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인간다운 뜨거운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옷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그것에 대해 고민하라고 나오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킬라킬>은 독특한 소재를 사용해서 평범한 주제를 이끌어내는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은 잘못하면 소재만 독특한 진부한 작품이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킬라킬>은 '옷'이라는 독특한 소재에서 '사람'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서로 연결시켜서 의미 있게 담아냈기 때문에 재미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읽은 분들에게 의미 있는 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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